현재 위치
  1. EXHIBITION

 

 

 



alive1,가변설치,박제,식물,화분,2015

 

 

시작가 : 박선하


전시제목 :  경계


전시기간 : 2016. 02.24 ~ 2016. 03.01


전시장소 : 갤러리 너트 (gallery knot)


              서울 종로구 와룡동 119-1

 

              T. 02-3210-3637

 

              www.galleryknot.com

 

 

 

 

 

전시시간 : Open 10:00 ~ Close 6:30(월요일 Open 14:00-18:30)


 

크기변환_alive2_가변설치_박제,식물,화분_2015.JPG


alive2,가변설치,박제,식물,화분,2015

 

 

 

크기변환_alive3_가변설치_박제,식물,화분_2016.JPG


 

alive3,가변설치,박제,식물,화분,2016

 

 

 

 

 

 

크기변환_bird_4분 17초, double channel video, 2015.jpg


bird_417, double channel video, 2015

 

 

 

크기변환_death_가변설치_박제_2015.JPG

death,가변설치,박제,2015

 

 

 

크기변환_pellet_가변설치_솜,FRP,닭뼈,토끼털_2013.JPG

pellet,가변설치,솜,FRP,닭뼈,토끼털,2013

 

 

 

크기변환_경계_가변설치_박제,모래_2015.JPG

경계,가변설치,박제,모래,2015

 

 

 

크기변환_나의죽음_Digital printing on photogph paper_2015.JPG

 

나의죽음,Digital printing on photogph paper,2015

 

 

 

크기변환_매달다_50X60.5cm_장지에먹_2015.JPG


매달다,50X60.5cm,장지에먹,2015

 

 

 

크기변환_무제_91X73cm_순지에먹_2016.JPG


무제,91X73cm,순지에먹,2016

 

 

 

크기변환_삽질하는여자_22X27.3_장지에먹,피그먼트펜_2015.JPG


삽질하는여자,22X27.3,장지에먹,피그먼트펜,2015

 

 

 

크기변환_죽음채집_가변설치_샬레,스컬피_2013.jpg


죽음채집,가변설치,샬레,스컬피,2013

 

 

 

크기변환_통제_50X50cm_순지에수묵채색_2015.JPG


통제,50X50cm,순지에수묵채색,2015

 

 

 

삶과 죽음의 페시미즘 Pessimism에 관하여

   

            

작가 박선하는 새를 박제한 작업을 하고 있다.

   

죽은 새를 해부하여 약품으로 처리하고 마치 영원히 살아있는 듯한 형태로서 거듭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박제.   

작가에게 있어 새는 생명을 키워드로 하는 일종의 상징으로서 대체된 듯하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박제되고 죽은 생명체들은 작가의 손을 통해 살아있는 듯한 형태의 외관을 유지한 채 영원한 삶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살아있고 죽음을 맞이하는 유기적 생명체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그 허무가 작품 내면에 짙게 깔린 듯 보인다.

   

늘 상 숨 쉬듯이 존재하며 함께해온 혈육이나 가까운 지인들의 죽음을 통하여 작가가 느끼는 죽음의 허망함과 생명의 나약함이 작업의 전체적 흐름에서 읽히는데 그러한 짙게 베인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성에 관한 불완전한 사유의 틈까지도 보는 이로 하여금 언뜻언뜻 보이게 한다.

   

“나의 죽음”이나 “삽질하는 여자”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작가는 끊임없이 인간의 삶을 결국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의 틀 속에 넣고 있는데 그것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간혹 겪어왔던 혈육의 죽음 등을 통한 간접적 체험과 공허한 삶의 끝판으로서 그의 작업에 모티브를 구성하게 된 듯하다.

   

생명은 유구한 것이 없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러한 한정적 유효함이 삶을 더 강건하고 아름답게 메우게 해주는 구실을 주기도 한다.

   

비록 작은 새의 박제조형일지라도 그것을 통하여 반추되는 작가적 시선에서 비친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함께 은유적으로 대치되어 보이며 이것들은 곧바로 젊은 작가의 눈에 비친 삶과 죽음의 공존의 시선과 더불어 교차하고 있다.

   

“경계’라는 설치 작업에서와같이 살아있는 새가 죽어 있는 새를 내려다보고 있는 일련의 작업에서 보여 주듯이 작가는 작업을 통하여 죽음에 대한 본인의 시선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해 주고 있는데 그것 또한 어찌 보면 죽음도 삶 일부분으로 보고 있으며 그것을 관조하듯 지켜보고 있다.

   

죽음을 맞이하고 그 후에 새가 되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작가적 가설은 다분히 동양적 사유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듯하며 사후에도 내가 조물주의 손이 되어 비록 형상 이나마 영속적으로 보존하여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은 듯 그 형태를 영구히 가두어두고 싶은 그 심리의 저변이 얼핏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자신에게 포상하듯 짊어진 신의 역할과 혹은 자학적인 반대 급부적 심리의 대변으로 박재 라는 형식을 빌려 죽음의 본질과 삶의 허무함을 드러내고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존재의 급작스러운 부재의 충격은 누구에게나 씻을 수 없는 상처이다. 하지만 인간이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크고 작은 많은 사랑과 행복 속에서 얻는 고귀한 시간을 작가가 오래도록 가지고 가길 기원해본다.


갤러리너트 성진민

     





 

 

작가노트

   

나는 종종 살아오면서 "사람 인생, 언제 죽을 모르는 거야. 당장 오늘 죽을 수도 있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에겐 아직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죽음을 맞이하기에 아직 젊고, 절대로 죽기 싫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꽤나 친했던 언니의 죽음을 접했다. 나보다 겨우 두 살 많은 언니가 그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니 "사람 인생, 언제 죽을 모르는 일." 그 말이 그제서야 피부로 와 닿았다.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이 구나. 그렇게 보니 삶과 죽음의 경계를 나누는 것은 '선'하나 차이였다. 선 안쪽에 있는 것은 살아있었고 선을 넘은 것은 죽어있었다.

죽음을 접했을 때 슬픔 뒤에 오는 것은 항상 충격과 의문이었다. 내일도 모레도 오늘처럼 살아있을 줄 알았던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10년 가까이 원망하고 저주했던 고모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고, 잔디밭에서 기어 나온 지렁이가 아스팔트에서 꿈틀거리며 한순간에 죽어갔다. 나는 그때마다 왜 이들이 죽어야만 하는 걸까. 조금만, 며칠만 더 살면 안될까 억지를 부리고 싶어졌다. 다들 우습게도 너무 쉽게 죽어갔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충격과 의문, 억지스러운 분노는 항상 나의 작업의 주요한 개념이자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를 곱씹을수록 이상하게도 나는 남의 죽음을 통해서 나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며 현존하고 있음을 확인받곤 했다. 마치 무언가가 사그라지고 썩어가는 광경을 정물화로 그린 ‘바니타스’와 이를 보고 느껴지는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메멘토모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확인받는 나의 살아있음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앞서 말했던 ‘선’의 안쪽과 바깥쪽도 아닌 선 위에서 불안스럽게 외줄타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표현하는 공간은 내가 발을 붙이고 서있는 바로 그 선 위의 중간적 공간이다. 이 선위에서 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하는 나의 심리상태는 살고도 싶고 죽고도 싶은 이중적인 심리 상태를 오고갔으며 나와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인지하는 순간에도 이중적으로 작용했다.

나의 작업의 가장 중요한 오브제는 ‘박제’이다. 처음 내가 박제를 접하게 된 계기는 그 것이 마치 나에게 숙명과도 같이 느껴졌고, 박제되어 있는 동물의 이미지가 섬뜩하면서도 잔상이 남아 오랫동안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박제가 죽은 생명체임에도 ‘살아있는 척’하는 그 모양새가 마치 나의 어두운 이면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박제를 직접 하면서는 공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두 가지의 상반된 감정이 들었다. 그 감정은 죽은 동물의 사체를 볼 때 느껴지는 죽음에 대한 당위적인 진지하고 묵직한 감정과 이에 비롯되는 불쌍함과 안타까움, 측은지심의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하찮은 미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폭력과 희열의 감정이다. 나는 이 상반된 양가적인 감정이 내 안에 공존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살아오면서 꽤나 사회에 잘 적응한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고 타자와의 관계적 충돌의 상황 속에서 역지사지의 생각을 강요당해왔으며 상대방에게 감정이입을 빠르게 잘하는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모범적인 성향 소위 ‘착한아이 컴플렉스’로 일컬어지는 나의 이면에는 폭력과 잔인성, 파괴적 성향이 잠재하고 있었으며, 나보다 하등하다고 판단되는 하찮은 미물은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통제해도 된다는 위험한 생각이 내재되어있었다. 이렇게 폭력성과 잔인함을 가진 또 다른 나의 이면은 마치 내가 아닌 ‘도플갱어’처럼 느껴졌다. 나이지만 동시에 내가 아닌 타자로 느껴지는 내 모습이 공포스럽고 충격적이었다. 이 공포스러움은 나에게 오랫동안 억압되어 있어 잊고 있었던 모습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언캐니’한 감정이 그 기저에 깔려있었다. 어쩌면 나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 내야 한다는 굳은 압박과 모든 생명체를 함부로 죽여서는 안되며 사랑해야 된다는 도덕심으로 억압하고 거부한 욕망이 ‘박제’라는 오브제를 통해 도출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살고도 싶고 죽고도 싶은 나의 심리상태는 박제될 새 혹은 나와 마주하는 것들 역시 살리고도 죽이고도 싶었다.

전시장에 펼쳐질 공간은 내가 현재 처해있는 나의 중간적 공간이다. 하지만 비단 이 공간이 나만이 서있는 나의 공간만은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불안하며 위태위태하다. ‘삼포세대’, ‘헬조선’, ‘흙수저’등 점점 더 살기 각박해지는 세상과 그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는 점점 더 과격하다. 그러한 세상에서 허망하고 허무하며 의욕 없이 살아가는 내 또래의 젊은 세대가 살아가는 공간도 나의 공간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전시를 통해 젊은 세대에 대한 위안과 위로라는 거창한 취지보다는 우리 세대가 처한 위태로움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공감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박선하 Park, Sun ha

 

2015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학부 조소과 수료

2012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소과 졸업

2008 계원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졸업

   

   

 

그룹전

2015 Emerging Artist展 (이화아트센터, 서울)

이 작품을 주목한다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관, 서울)

   

2014 ASYAAF (문화역 서울 284, 서울)

3030 展 (팔레드서울, 서울)

   

2013 감정실험실 展 (Space cum, 서울)

   

   

   

   

   

   

E-mail: artist.sunhapark@gmail.com



 

 




이전 제품

다음 제품